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세 리마 (문단 편집) == [[KIA 타이거즈]] 시절 == 그 이후 도미니카와 멕시코 리그를 전전하다, 2008년 [[KIA 타이거즈]]와 계약하게 된다. 성적은 별로였으나 존재 자체만으로 포스를 뿜어냈는데, 바로 '한국 국가대표' 투수였던 [[박찬호]]도 해내지 못한 '''메이저리그 20승 투수'''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. [[박찬호]]야 말할 것도 없고, [[김선우(1977)|김선우]]라든지 [[최희섭]]이라든지 그저 메이저리그 출신이란 사실만으로 확실한 프리미엄이 붙게 마련인데, 호세리마는 메이저리그에서 21승을 거두며 사이영상 4위 해본 투수였으니까 차원이 달랐다.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인지도가 있었고 그런 투수를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반가웠을 것이다. 마치 [[박찬호]]가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었을 때 그저 국내에서 보는 것만으로 반가웠듯이. 리마 타임으로 대표되는 쇼맨쉽이 좋았던 선수. 끈적한 친화력, 열악한 [[무등 야구장|무등구장]]에 대한 놀라운 적응력, 훌륭한 팬서비스 등 한때 MLB 20승 투수라고는 믿기 어려운, 팬 입장에서는 최고의 선수였다. [[이종범]]은 그를 [[https://m.chosun.com/svc/article.html?sname=news&contid=2009073100736|성적만 좋았으면 더 많은 인기를 끌었을 선수]]로 평가했다. 리마타임의 의미는 3가지였는데, 하나는 당연히 라틴음악과 함께한 경쾌한 행동들, 2번째는 NBA의 명선수 레지 밀러처럼 리마가 갑자기 전성기를 구가한 것에 대해서 부르는 것으로 사실상 명칭의 어원은 이쪽이고, 마지막으로 [[LA 다저스]] 시절 당시도 FC 다저스의 명성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던 [[LA 다저스]]가 이상하게 호세 리마만 등판하면 타자들이 득점 지원을 잘해줘서 승리를 뽑아냈던 것에 대한 경탄이기도 했다.[* [[2004년]] 호세 리마의 성적은 13승 5패 4.07. 반면 득점지원을 평소처럼 받았던 같은 해 같은 팀의 [[오달리스 페레즈]]의 성적은 7승6패 평균자책점 3.25였다. 다만 2번과 3번의 모습은 한국내에서는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리마타임 하면 1번의 의미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.] [[파일:pk6s9sW.gif]] [[파일:FnYiaLt.gif]] [[파일:aumIvjm.gif]] 차고 넘치는 리마 관련 움짤들(지금 이거 말고도 더 있다. 야구 방망이를 들고 뜬금없는 골프스윙이라든가…). 심지어는 [[함평세계나비엑스포]]와 엮여서 '함평 세계 각성 엑스포'' 짤까지 있을 지경.[* 리마가 함평 2군구장 갔다가 콜업된 이후 다시 잘 던진 걸 각성에 비유했는데 그걸 세계나비엑스포 홈페이지 메인 상단이랑 리마 움짤을 합성해놨다.] 단 한 시즌 뛴 선수(그나마 풀타임도 아닌데)치고는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. 그 밖에 한국 프로야구에 입단한 외국인 선수들 중 가장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선수이기도 했다. 하지만 많은 나이 탓에 구위가 떨어져 장기였던 체인지업도 잘 통하지 않으며 고전하다가 08시즌 중반에 퇴출당하고 말았다. 성적은 당시 김기아씨와 더불어 좋지 않았다.[* 참고로 리마를 퇴출시키고 데려온 [[케인 데이비스]]는 [[구위]]는 그럭저럭 괜찮아 다음시즌 재계약도 고려되었으나, 느린 슬라이드 스텝 때문에 낙제점을 받았다.] 그렇게 형편없는 성적은 아닌데, 불안불안한 투구 내역과 많은 나이로 생각보다 이닝이팅이 좋지는 않아서 팀 성적 향상을 위해 이르게 내친 건데, 그 해 기아는 폭망하면서 그냥 리마로 쭉 가는 게 돈이라도 아꼈을 거라는 평을 받았다. [[양현종]]과 친하기로 유명했다. [[KIA 타이거즈|기아]]에 있었을 때 [[아버지]] [[아들]] 할 정도로 친했다고 한다. 어느 정도냐면 [[양현종]]이 [[2010년]] [[6월 2일]]에 [[완봉승]]을 기록했을 때, 인터뷰 중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가 '얼마 전 세상을 떠난 호세 리마가 생각난다'고 답변했고 17년 한국시리즈 MVP 인터뷰에서도 하늘에 있는 리마를 생각하며 위기를 극복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언급했다.[* [[양현종]]은 이 답변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.][* [[2008년]] [[양현종]]이 한참 힘든 시절, 너 활발한 성격인 것 다 아는데 왜 그렇게 기 죽어 지내냐. 너의 공은 아무도 못 친다. 등등의 조언을 해주는 선수가 리마였다고 한다. [[2015년]] [[5월 26일]], 양현종이 리마의 기일에 134구를 던지는데, 이것이 리마를 추모하자는 의미에서 자신이 무리하면서까지 던진 것이라고 하며, 실제로 양현종의 모자엔 '리마타임' 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. 또한 여담이지만 [[PGR21]]에 당시 리마와 양현종을 언급하는 글이 있다. 별 상관은 없지만 사람 울리게 하니 한번 읽어보면 좋다. [[http://www.pgr21.com/pb/pb.php?id=freedom&no=58396&page=83|글]]] [[http://sports.news.naver.com/videoCenter/index.nhn?uCategory=kbaseball&category=&listType=date&date=20100602&gameId=&teamCode=&playerId=&keyword=&id=15477&page=1|인터뷰영상]] [[http://tv.naver.com/v/2234281|인터뷰영상2]] 리마 자신은 KIA에서 잘 하지 못했지만, 간접적으로나마 양현종이 성장하도록 토대를 놓은 셈. [[파일:attachment/ljj.jpg]] 그리고 [[이재주]]의 별명 중 하나인 '재주스패로우'의 원형이 된 이 그림이 바로 이 호세 리마가 그린 그림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